Q.T
오늘의 찬양
찬양 /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오늘의 말씀
<요 9:24~41>
24 이에 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25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26 그들이 이르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27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28 그들이 욕하여 이르되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29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30 그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31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32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33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34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35 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이르시되 네가 인자를 믿느냐
36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38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40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오늘의 설교
오늘 본문은 눈을 고침 받은 사람이 바리새인들과 다시 대면하는 장면입니다. 이제 이야기는 단순한 기적 사건을 넘어서 믿음과 영적 눈뜸의 문제로 깊어집니다.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집니다. 눈먼 사람은 보게 되었고, 잘 본다고 말하던 사람들은 점점 더 보지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눈을 고치신 것이 아니라, 누가 진짜 보는 사람인지 드러내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정말 보고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본다고 착각하는 사람인가?”
1. 진짜 믿음은 경험한 것을 담대히 말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고침 받은 사람을 다시 불러 심문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그 사람이 죄인인 줄 안다.” 이 말은 사실상 압박입니다. “예수는 틀렸다고 말해라.” 그때 이 사람이 뭐라고 말합니까? “그가 죄인인지 아닌지 나는 모릅니다. 한 가지는 압니다. 내가 맹인이었다가 지금 봅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논쟁에서 이기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많이 아는 것이 믿음도 아닙니다. 내가 경험한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는 것. 그게 믿음입니다.
그는 신학자가 아닙니다. 성경 전문가도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합니다. “나는 달라졌다.” 누구도 이 증언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삶의 변화는 가장 강력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완벽히 설명 못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내 삶에 하신 일은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완고한 마음은 증거가 많아도 보지 못합니다.
바리새인들은 기적을 봤습니다. 증언을 들었습니다. 사실 확인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믿지 않습니다. 왜입니까?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마음이 닫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봅니다. 믿기 싫으면 어떤 증거도 부족합니다. 그들은 이미 결론을 정해 놓았습니다. “예수는 틀렸다.” 그래서 아무리 분명한 일을 봐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게 영적 눈먼 상태입니다. 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닫힌 상태입니다. 우리도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 방식대로 일하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는 태도, 내 생각과 다르면 거부하는 태도, 이것이 영적으로 눈이 먼 상태입니다.
3.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진짜 보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을 다시 만나십니다. 그리고 물으십니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 그는 묻습니다. “그가 누구십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보고 있는 그가 바로 그다.” 그는 말합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그리고 예수님께 경배합니다. 이 장면이 핵심입니다. 육체의 눈이 열린 것이 끝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영적 눈이 완전히 열립니다. 반대로 바리새인들은 말합니다. “우리도 맹인이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다.” 모른다고 말하면 배울 수 있습니다. 못 본다고 인정하면 보게 됩니다. 하지만 “나는 다 안다” 하면 멈춥니다. 영적으로 가장 위험한 상태는 무지가 아니라, 착각입니다.
결론
오늘 하루 우리는 아주 단순하지만 중요한 실천을 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 한 번, 이렇게 고백해 봅시다. “주님, 제가 모르는 게 많습니다. 오늘도 저를 보게 해 주세요.” 그리고 오늘 내가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 한 가지를 분명하게 인정하고 말해 봅시다. 작아도 좋습니다. “주님이 나를 도우셨다”라고 입으로 고백해 봅시다. 보는 사람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겸손하게 인정하는 사람인 줄 믿습니다. 오늘 하루 눈먼 자의 삶이 아니라, 보는 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의 적용
나는 예수님이 내 삶에 하신 일을 분명히 말할 수 있나요, 아니면 설명 못 할까 봐 침묵하고 있나요? 내가 이미 다 안다고 생각해서 하나님이 새롭게 보여주시려는 것을 놓치고 있는 영역은 어디인가요?
오늘의 기도
개인을 위한 기도 본다고 착각하는 교만을 버리고 날마다 새롭게 보게 하소서. 내 삶에 행하신 일을 숨기지 않고 담대히 고백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교회를 위한 기도 우리 교회가 지식보다 믿음, 판단보다 겸손을 선택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을 분명히 보고, 분명히 믿고, 분명히 증언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한 주간 선교지를 위한 기도 마약 카르텔 수장의 사살로 인한 폭력 사태가 진정되게 하시고, 인근 지역의 선교사들의 안전을 지켜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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