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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몬떼레이한인교회

    Q.T

    2026년 3월 2일(월) 매일묵상
    2026-03-02 04:33:04
    주성규
    조회수   77

    ​오늘의 찬양 

    찬양 / 주님 말씀하시면

     

     

     

     

    오늘의 말씀  

    <요 9:13~23> 

    13   그들이 전에 맹인이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14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15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물으니 이르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16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
    17   이에 맹인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하니
    18   유대인들이 그가 맹인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19   이는 너희 말에 맹인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해서 보느냐
    20   그 부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아들인 것과 맹인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21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에게 물어 보소서 그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22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
    23   이러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그가 장성하였으니 그에게 물어 보소서 하였더라

     

     

     

     

    오늘의 설교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 눈을 고침 받은 사람의 부모가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아들은 분명 기적을 경험했고,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부모는 이상하게도 담담합니다. 기쁨보다 조심스러움이 더 큽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두려움 때문입니다.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는 사람을 출교하기로 이미 정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신앙 고백에는 대가가 따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비슷합니다. 믿는다고 말하기 어렵고, 신앙을 드러내기 부담스럽고, 괜히 손해 볼 것 같고, 관계가 불편해질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이 본문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두려움 앞에서, 당신은 어디까지 말할 수 있습니까?”

     

    1. 분명한 은혜를 경험해도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부모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이 사람은 우리 아들이고, 맹인으로 태어났습니다.” 기적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은혜를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 다음 질문에는 선을 긋습니다.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본인에게 물어보세요.” 왜 이렇게 선을 긋습니까? 두려움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봐야 합니다. 은혜를 경험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담대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신 걸 알아도,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계산합니다. “이 말 했다가 불이익 있으면 어떡하지?”, “괜히 문제 생기는 거 아니야?”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기도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신 것을 압니다. 그래도 입 밖으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신앙은 마음속 확신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고백할 때 비로소 살아 움직입니다.

     

    2. 두려움은 침묵하게 만들고, 침묵은 신앙을 멈추게 만듭니다. 

    본문 22절이 핵심입니다.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유대인을 두려워함이라.” 두려움은 무엇을 하게 합니까? 입을 닫게 만듭니다. 거짓말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진실을 충분히 말하지도 않습니다. 이게 가장 위험한 상태입니다. 신앙을 부정하지도 않지만, 드러내지도 않는 상태. 믿지만 말하지 않는 상태. 이 상태가 계속되면 어떻게 될까요? 신앙은 점점 개인적인 취향이 됩니다. 삶과 분리됩니다. 결국 영향력을 잃습니다.

     

    반대로 오늘 본문 앞부분에서 고침 받은 사람은 다릅니다. 그는 다 알지도 못합니다. 신학도 모릅니다. 하지만 말합니다. “내가 맹인이었다가 지금 본다.” 이게 신앙입니다.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경험한 것을 말하는 것. 하나님은 완벽한 설명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정직한 증언을 원하십니다.

     

    3.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는 사람’보다 ‘말하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부모는 안전을 선택했습니다. 아들은 증언을 선택했습니다. 결국 누가 이야기의 중심이 됩니까? 아들입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만 쓰시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나는 잘 몰라요.” 괜찮습니다. “나는 설명 못 해요.” 괜찮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내 삶에 일하셨습니다.” 이 말이면 충분합니다. 신앙은 완벽한 이해가 아니라, 담대한 고백으로 자랍니다.

     

    결론

    오늘 우리는 거창한 결단보다 작은 고백 하나를 실천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이 내 삶에 하신 일 한 가지를 누군가에게 말해봅시다. “나 요즘 하나님께서 도우신 것이 하나 있어.” 이 한 문장으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두려움이 올라올 때 속으로 이렇게 고백해 봅시다. “나는 숨기지 않겠습니다. 나는 하나님 편에 서겠습니다.” 신앙은 크게 외치는 것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작게라도 말하는 순간 시작됩니다. 오늘 하루도 담대한 선포와 순종 가운데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의 적용

    요즘 내가 믿는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은 언제인가요? 그 순간에 내가 침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오늘 하루 하나님이 내 삶에 하신 일 한 가지를 누군가에게 말한다면, 누구에게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오늘의 기도 

    개인을 위한 기도 두려움 때문에 믿음을 숨기는 사람이 아니라, 경험한 은혜를 담대히 말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사람의 시선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바라보는 마음을 오늘 제게 주옵소서.

     

    교회를 위한 기도 우리 교회가 침묵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쁘게 증언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두려움보다 믿음이, 계산보다 순종이 더 크게 역사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한 주간 선교지를 위한 기도 마약 카르텔 수장의 사살로 인한 폭력 사태가 진정되게 하시고, 인근 지역의 선교사들의 안전을 지켜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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