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찬양 : 주와 같이 길가는 것
말씀 : 요 4:43-54
묵상 :
1. 혹시 그런 경험 없으십니까? 인생의 가장 절박한 문제 앞에서, 하나님께 나아가 간절히 기도하는데, 내 마음속에는 이미 해결책이 다 그려져 있는 겁니다. "하나님, 부디 이 사람을 만나게 해주셔서, 그가 이런 말을 하게 해주시고, 그래서 이 문제가 이렇게 풀리게 해주십시오."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좋아 보이는 그 길, 그 방법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믿으며, 하나님께서 내 계획대로 응답해주시기를 소망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께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우리 이해를 뛰어넘는 방식으로 일하기 시작하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오늘 우리는, 자기 인생 최고의 위기 앞에서, 자신이 생각한 유일한 해결책을 들고 예수님을 찾아온 한 아버지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져야 할 믿음의 자세에 대해 묵상하길 소망합니다.
2. 요한복음 4장에는 죽어가는 아들을 둔 한 아버지가 등장합니다. 그는 '왕의 신하', 헤롯 왕을 섬기는 고위 관리였습니다. 권력과 물질, 명예를 모두 가졌을 그였지만, 지금 그는 죽어가는 아들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버지였습니다. 가버나움에서부터 갈릴리 가나까지 꼬박 하루가 걸리는 40km의 먼 길을 달려 예수님께 와서 간청합니다.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47절)” 그의 믿음은 분명했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와 주셔야만, 눈에 보이는 행동이 있어야만 일이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3.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전혀 달랐습니다.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50절).” 눈에 보이는 행동을 구하는 자에게 보이지 않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제 선택은 아버지의 몫입니다. 눈에 보이는 확실함을 붙들 것인가, 아니면 아무 증거도 없는 말씀을 붙들 것인가?
성경은 조용히 기록합니다.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50절).” 그는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40km를 되돌아가는 그 고독한 길 위에서, 그가 의지할 것은 오직 예수님의 그 보이지 않는 말씀 한마디뿐이었습니다. 그 길 위에서 얼마나 많은 의심과 불안이 그를 덮치려 했을까요?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만약 갔는데 아들이 죽었다면 어떡하지?' 그러나 그는 그 모든 의심을 이겨내고, 오직 말씀을 붙들고 순종의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4. 그리고 길 위에서 종들을 만나 아들이 나았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열이 떨어진 시각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로 그때였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그 순간 그는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위로의 말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능력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의 믿음은 그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고, 온 집안이 믿게 되는 놀라운 열매를 맺게 됩니다.
5. 오늘 우리의 삶에도 이런 길이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자꾸 “내려오소서”라고 기도하지만, 주님은 때로 “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원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이미 주어진 말씀을 붙들고 한 걸음 내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모든 상황이 정리된 뒤에 생기는 확신이 아니라, 아직 보이지 않아도 말씀을 따라 걷는 선택 속에서 자랍니다.
혹시 지금, 결과가 보이지 않는 길 위에 서 있습니까? 기도는 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불안합니까? 그렇다면 오늘 이 장면을 기억해 봅니다.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한 아버지가 말씀 하나 붙들고 걸어갔고, 그 길 끝에서 하나님의 일이 이미 이루어져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생각보다 크고 놀랍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오늘도 의지하고, 살아가는 복된 몬떼레이 한인교회 성도님들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1) 개인
보이는 증거가 없어도 주신 말씀을 붙들고 끝까지 걸어가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2) 교회
가정교회 세미나를 참석하고 있는 담임목사님과 사모님에게 은혜를 더하시고,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발견하고 돌아오는 귀한 시간 되게 하옵소서.
(3) 다음세대
다음세대와 청년들이 복음의 능력과 구원의 감격을 맛보게 하옵소서. 복음을 아는 세대가 아니라, 복음을 경험한 세대가 되게 하옵소서.
| 번호 | 제목 | 작성자 | 등록일 | 조회수 | 첨부 파일 |
|---|---|---|---|---|---|
| 316 | 2026년 3월 18일(수) 매일묵상 | 주성규 | 2026-03-18 | 24 | |
| 315 | 2026년 3월 17일(화) 매일묵상 | 주성규 | 2026-03-17 | 44 | |
| 314 | 2026년 3월 16일(월) 매일묵상 | 주성규 | 2026-03-16 | 44 | |
| 313 | 2026년 3월 13일(금) 매일묵상 | 주성규 | 2026-03-13 | 52 | |
| 312 | 2026년 3월 12일(목) 매일묵상 | 주성규 | 2026-03-12 | 63 | |
| 311 | 2026년 3월 11일(수) 매일 묵상 | 주성규 | 2026-03-11 | 71 | |
| 310 | 2026년 3월 10일(화) 매일묵상 | 주성규 | 2026-03-10 | 66 | |
| 309 | 2026년 3월 9일(월) 매일묵상 | 주성규 | 2026-03-09 | 73 | |
| 308 | 2026년 3월 6일(금) 매일묵상 | 주성규 | 2026-03-06 | 80 | |
| 307 | 2026년 3월 5일(목) 매일묵상 | 주성규 | 2026-03-05 | 71 | |
| 306 | 2026년 3월 4일(수) 매일묵상 | 주성규 | 2026-03-04 | 64 | |
| 305 | 2026년 3월 3일(화) 매일묵상 | 주성규 | 2026-03-03 | 63 | |
| 304 | 2026년 3월 2일(월) 매일묵상 | 주성규 | 2026-03-02 | 76 | |
| 303 | 2026년 2월 27일(금) 매일묵상 | 주성규 | 2026-02-27 | 63 | |
| 302 | 2026년 2월 26일(목) 매일묵상 | 주성규 | 2026-02-26 | 75 |

댓글